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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보금자리

오늘은 오랜만에 세 명이 다같이 모여서 집 안이 복작복작했어. 누구는 함께 저녁을 해먹어보겠다고 2명을 끌고 장도 보러가고 누구는 그러다가 낡은 서점에서 흥미로워보이는 책도 샀지. 누구는 겸사겸사 친한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다며 가져온 레드와인도 저녁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했어. 

 

물론 저녁이 완벽하진 않았어. 요리가 익숙한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었고 한명만 했으면 되었을텐데 괜시리 해보겠다고 뛰어들어서 조금은 타버렸거든. 그래도 이렇게 보낸 시간이 즐거웠다면 괜찮았을거라 생각해. 요리를 하다보니, 자신이 사온 낡은 책에 살짝 물이 튀어서 얼룩졌지만 그것도 그저 살짝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건 그가 이들과 쌓아온 시간 덕분 아닐까 싶어. 조용히 잔을 들어 그는 목을 파고드는 레드와인이 괴롭지 않다고 느꼈어.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으로  무엇이든 그 구멍에 들이부어왔던 기억이 이젠 괴롭지 않나봐. 

 

왁작지껄한 저녁이 지나가니까 아까 마셨던 레드와인의 취기가 이 셋을 쥐어잡았는지, 다같이 소파에 앉아서 졸고 있어. 이미 한 명은 책을 들고 있는 이의 무릎에서 잠을 청하고 있어. 얼굴이 행복해보이는걸 보니까, 꿈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보고있나봐. 물론 자신만 그들을 만났다는 걸 기억하지만 기억되지 못하더라도 그 모든 만남은 그에게 소중했으니까. 한 사람은 아까 보던 책을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어라... 거꾸로 들었네. 그런데도 글은 제대로 잘 읽어내리고 있나봐. 흐리멍텅한 눈이 아니라 책을 제대로 읽고 있긴한데, 조금 멍한가봐. 옆에서 계속 자신의 허리를 주물럭거리면서 만지고있는데도 전혀 모르네. 손 움직이기에 바쁜 사람은 술에 취했는지 살짝 애교가 늘었어. 몸을 바짝 붙어서 책 말고 자기를 봐달라면서 칭얼거리는데도 거꾸로 든 책을 읽기 바빠서 대답도 안해주고 있어. 어디까지 무시하나 이번엔 더 큰 수를 낼껀가봐. 다들 각자에게 즐거운 저녁이었으면 좋겠네.